책소개
호손 본인이 쓴 최초의 장편 로맨스 ≪주홍 글자≫는 미국 문단의 지축을 흔든 일대 사건이었다. ≪주홍 글자≫ 초판 2500부가 권당 75센트에 팔리면서 호손의 명성이 쌓이기 시작했다. 허먼 멜빌은 ≪문학 세계(The Literary World)≫에 익명으로 <호손과 그의 이끼(Hawthorne and His Mosses)>라는 제목의 평론을 싣고 그를 칭찬했다. 또 헨리 제임스는 이 소설을 가리켜 미국에서 이제까지 나온 중에 가장 훌륭한 문학 작품이라고 극찬했다. ≪주홍 글자≫가 이처럼 폭발적 인기를 누리게 된 가장 중요한 요인은 호손 자신이 개발한 독특한 로맨스 장르 때문일 것이다.
≪주홍 글자≫의 서장인 <세관>은 실제와 환상의 결합이라는 이야기 구조에 실마리 노릇을 한다. 세관은 현실 세계에 존재하는 국가기구이다. 이런 기구의 사무실 안에서 과거 로맨스에 관한 자료를 찾았다는 설정은 픽션을 실화처럼 꾸며 낼 수 있는 좋은 바탕이 된다.
≪주홍 글자≫의 본 이야기에 들어가서 로맨스 작가인 호손은 우선 서사의 배경을 설정하는 데 관심을 기울인다. 첫 번째 단계로 가장 중요한 작중인물이라 할 한 무리의 군중을 그린다. 그들은 개척 시대의 근엄한 청교도들로 하나같이 숨을 죽인 채 죄수인 헤스터 프린이 문제의 주홍 글자를 가슴에 붙이고 걸어 나오게 될 감옥 문에 호기심 어린 눈을 고정한다. 이어서 군중의 시선이 집중되었던 감옥 문이 열리고 헤스터가 주홍 글자 A를 가슴에 달고 3개월 된 딸인 펄을 안고 걸어 나옴으로써 본격적으로 그녀는 이야기 속으로 들어온다.
군중들은 그 주홍 글자 A의 뜻인 ‘간통(Adultery)’, ‘간통을 범한 여자(Adulteress)’를 떠올리며 그녀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러나 헤스터는 계속해서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헌신적으로 돕는다. 특별히 병간호를 하기도 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삯바느질도 한다. 그녀는 근심 걱정이 가득한 집이면 어디든 찾아간다. 이에 사람들은 A의 뜻을 ‘능력 있음(Able)’, ‘천사와 사도(Angel and Apostle)’이라는 상징으로 바꿔서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헤스터가 죄인에서 성인으로 변하는 모습은 꽤 획기적이고 적극적이라고 할 수 있다.
≪주홍 글자≫는 한국에도 잘 알려진 작품이다. 국내에서 나온 번역본은 대략 90종 이상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많은 번역본들이 문제를 안고 있다. 첫째 문제는 제목 오역. 아주 오래전의 번역부터, 아마 1953년 최재서의 ≪주홍 글씨≫부터가 오역의 효시로 보인다. 이후 이 제목이 관례적으로 마구 사용되어 왔기에 지금에 와서는 퍽 굳어 버린 듯한 느낌이다. 작품 초반에 세관 공무원이 발견한 물건은 ‘Letter A’다. 구체적인 글자 A를 가리킨 것이지 추상명사인 글씨(writing)가 아니다.
두 번째 문제는 서장에 해당하는 <세관>이 빠진 번역본들이 있다는 점이다. 미국에서 나온 많은 판본에는 꼭 <세관>이 실려 있으나, 국내 번역본 중 일부는 이 부분이 빠진 경우가 있다.
이 책은 국내 번역본들이 답습해 온 두 가지 문제를 해결했다. 원전으로는 ≪The Scarlet Letter, The Centenary Edition of the Works of Nathaniel Hawthorne, Volume I≫(Columbus: Ohio State University Press, 1962)을 사용했다.
200자평
너새니얼 호손(Nathaniel Hawthorne)의 초기작들은 미국 소설의 원조로 인정받는다. 그 정도의 대가가 쓴 첫 장편 로맨스 ≪주홍 글자(The Scarlet Letter)≫. 흔히 국내에서는 ‘주홍 글씨’로 많이 알려졌는데 이건 제목부터 오역을 한 경우다. 제목부터 똑바로 옮긴 책으로 중요한 부분 40퍼센트를 발췌했다.
지은이
너새니얼 호손(Nathaniel Hawthorne)은 1804년 매사추세츠 주 세일럼 마을에서 너새니얼 헤이손(Nathaniel Hathorne, 호손 가문의 원래 성씨에는 w자가 없었음)과 엘리자베스 매닝(Elizabeth Manning)의 3남매 중 둘째로 태어났다. 조상 중 존 헤이손(John Hathorne)은 과거 마녀 재판을 담당한 판사였다. 호손은 이를 가문의 수치로 여겨 자신의 성(姓)에 w자를 삽입해 바꿨다.
보든 대학(Bowdoin College)을 졸업한 뒤 12년 동안 직업도 갖지 않은 채 독서와 창작에 전념했다. 1830년 <세 언덕의 협곡(The Hollow of Three Hills)>을 발표한 이래, 1839년까지 각종 매체에 단편과 소품 22편을 모두 익명으로 게재했다.
1837년의 ≪진부한 이야기들(Twice-Told Tales)≫을 필두로 이후 ≪구목사관의 이끼(Mosses from an Old Manse)≫, ≪눈의 이미지와 다른 진부한 이야기들(The Snow-Image, and Other Twice-Told Tales)≫ 등을 출간했다.
그는 한때 공직에도 발을 들여 1839년 보스턴 세관 계량관, 1846년 세일럼 세관 수입품 검사관, 1853∼1857년 영국 리버풀 주재 영사 등을 지냈다. 그의 세관 공무원 경력은 ≪주홍 글자≫에서 일부 엿볼 수 있다. 1860년엔 본인의 마지막 장편 로맨스인 ≪대리석 목양신(The Marble Faun)≫을 출간했다. 1864년, 건강이 극도로 악화돼 요양 여행을 떠났다가 여관에서 사망했다.
옮긴이
김지원은 충남 부여에서 태어났다. 부여고등학교와 공주사범대학 영어교육과를 졸업했고, 연세대학교와 건국대학교에서 미국 소설 연구로 석사 학위와 박사 학위를 각각 받았다. 호손과미국소설학회 제9대 회장 및 한국번역학회 제2∼3대 회장을 역임했고, 듀크 대학과 노스캐롤라이나 대학 객원교수를 지냈다. 미국에 체류하는 동안 호손의 고향이자 주요 작품 배경인 매사추세츠 주의 보스턴을 포함해 세일럼 및 콩코드 등지를 여러 차례 답사한 바 있다. 1979년 이래 세종대학교 영어영문학과 교수로 봉직했으며, 그간 인문과학대학장, 국제어학원장, 영어영문학과장 등을 거쳤고 현재 언어번역연구소를 맡고 있다.
차례
해설
지은이에 대해
<세관>-≪주홍 글자≫의 서장
제1장 감옥 문
제2장 장터
제3장 인지(認知)
제4장 대면
제5장 바느질하는 헤스터
제6장 펄
제7장 총독 저택의 접견실
제8장 꼬마 요정과 목사
제9장 의사
제10장 의사와 환자
제11장 마음속
제12장 목사의 밤샘
제13장 헤스터의 또 다른 일면
제14장 헤스터와 의사
제15장 헤스터와 펄
제16장 숲길 산책
제17장 목사와 신도
제18장 쏟아지는 햇살
제19장 시냇가의 어린애
제20장 미로를 헤매는 목사
제21장 뉴잉글랜드의 경축일
제22장 행렬
제23장 폭로
제24장 결말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그러나 그 이상한 꾸러미 속에서 나의 주의를 가장 많이 끌었던 것은 몹시 낡고 색 바랜 아름다운 주홍색 천이었다. 그 헝겊에는 금실로 수놓은 자국이 남아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몹시 해어지고 훼손되어서 금빛 자수(刺繡)의 광택은 조금도, 아니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첫눈에 알아볼 수 있는 것은 놀라운 자수 솜씨였다. 그 솜씨는(그런 신비한 재주에 능통한 여성들에게 확인한 것이지만) 지금은 잊힌 기술로서 실을 뜯어내면서 역추적해 보아도 현재로서는 도저히 되살릴 수 없는 것이었다. 그 너덜너덜한 주홍색 천은 오랫동안 사용해서 낡은데다가 벌레까지 파먹어 걸레 조각이 되고 말았다. 자세히 살펴보니 글자 모양을 띠고 있었다. 그것은 대문자 A였다. 정확히 측정해 보았더니 A자 양쪽 다리의 길이는 3인치 4분의 1이었다. 의심할 것도 없이 그 글자는 옷에 달 장식으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그 글자는 이상하리만치 나의 관심을 끌어당겼다. 내 시선은 그 낡은 주홍 글자 위에 못 박히듯 고정되어 미동도 하지 않았다.
나는 그 글자가 여러 가지 가설 가운데 백인들이 인디언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궁리해 낸 장식 중 하나였는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 그것을 무심코 가슴에 갖다 대 보았다. 그때 글자는 붉은 헝겊이 아니라 시뻘겋게 달아오른 무쇠로 되어 있는 것 같았다. 그 순간 오싹하고 소름이 끼치면서 나도 모르게 손을 떼는 바람에 그 헝겊을 마룻바닥에 떨어뜨리고 말았다.
나는 온통 주홍 글자에만 온 정신을 쏟고 있었기 때문에 그 순간까지도 그것을 싸고 있는 때 묻은 종이 두루마리를 살펴보는 것을 잊고 있었다. 그제야 그것을 펼쳐 보았는데, 그 속에는 반갑게도 옛 검사관의 필적으로 사건의 경위가 비교적 완전하게 설명되어 있었다.